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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원도 맞춰야 하는 회계, 쌍용차는 숫자 제각각”

    • 조합원
    • 14-02-09 23:40
    • 1,929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해고 무효’ 판결의 출발점이 된 회계조작 문제를 2009년부터 파헤쳐 온 김경율 회계사가 9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때 쌍용차 희생자 천막 빈소가 차려졌다 철거된 덕수궁 앞에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가두서명을 받고 있다. | 김정근 기자

    ㆍ판결 이끈 김경율 회계사

    김경율 참여연대 회계사(45)는 지난해 10월 중순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술잔을 기울였다. 쌍용차 회계조작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내린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특별감정보고서가 나온 직후였다.

    “한 전 지부장이 ‘나는 더 이상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다독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때가 가장 밑바닥이었다. 나는 그날 ‘회계 쪽은 내가 책임지겠다.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었다.”

    김 회계사는 지난 6일도 무거운 맘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서울고등법원의 쌍용차 해고무효 소송 판결 전날이었다.

    “변호사들이 이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해고자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돼왔기 때문에 이번에 지면 ‘더 이상 무얼 해야 하나’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자료 파고들다 오류 찾아내… 금감원 간부 보더니 손 떨어

    법원 감정인 최종학 교수는 1000억을 미미한 차이 치부

    회계법인과 고객사는 ‘갑을’… 손실 과다계상 사례 많을 것


    이튿날 ‘혹시’ 하며 지켜본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고 김 회계사는 한 전 지부장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대전에서 밀린 업무를 하고 있던 그는 승소 소식을 듣고 곧바로 경기 평택으로 향했다.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30~40명이 노조 사무실 뒤편 공터에서 연 조촐한 파티에 참석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자살·재활 이야기를 담은 책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 작가가 50인분 이상의 쇠고기 선물을 보내 파티상은 풍족했다. 김 회계사는 “정말 기분 좋았다. 쌍용차 노조에 희망적인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개인적으로도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재판부로부터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날 끝없이 오가는 술잔과 대화에 그는 많이 취했다.

    김 회계사는 1·2심에서 뒤집힌 판결의 핵심인 회계 문제를 2009년 파업 당시 처음으로 제기했고, 지난해 6월에는 안진회계법인의 2008년 말 쌍용차 회계감사 보고서와 그 기초자료인 조서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결정적인 회계 부실 정황을 밝혀냈다. 쌍용차 해고무효 판결이 나오기까지 ‘숨은 주역’인 그는 “말도 안되는 회계로 시작돼 엄청난 피해와 해고 사태를 빚은 과정이 여실히 드러났다”면서 “이제는 쌍용차와 안진회계법인의 회계조작 여부, 금융감독원의 부실 감리 등에 대해 규명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쌍용차 해고 문제에 관여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15년 전쯤부터 참여연대에서 재벌의 부당거래 등에 대해 감시활동을 해왔다. 파업 중이던 2009년 7월 쌍용차 노조가 회계 처리의 문제점이 있는지 봐달라고 해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때 (파업을 앞두고 다시 나온) 삼일회계법인 조사보고서가 자산가치를 저평가했다는 점을 제기했고 2012년까지 회계조작 의혹의 주된 근거가 됐다.”

    - 신차 생산 없이 기존 차종을 단종시킨다는 전제로 유형자산 가치를 낮춘 것이 회계 문제의 핵심이다.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해 3월 회의할 때 노조 간부가 안진의 감사조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쌍용차가 1심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인데 그때 처음 봤다. 의혹을 밝혀낼 주된 단서였다. 하지만 재판부에 제출된 자료인데도 식별이 불가능하고 조서엔 필수적인 레퍼런스(참고)가 없었다. 마치 훼손된 조선시대 비문을 복원하듯이 자료를 파고들다가 유형자산을 평가하면서 모든 차종이 공통으로 쓰는 자산을 제로(0)로 한 부분을 찾아냈다. ‘잡았다’ 싶었고, 전율이 왔다.”

    - 지난해 6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발표 전에 심 의원실에서 회계감사를 감리했던 금융감독원 국장을 불렀는데, 자료를 보는 그 국장의 손이 덜덜 떨리더라. 이때 눈치를 챘다. 전혀 다른 얘기가 이제 시작되는구나,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노조와 쌍용차가 함께 선임한 최종학 서울대 교수의 감정 결과는 달랐다.

    “최 교수의 감정 결과가 나온 이후에 변호사들과 함께 모였는데 그때는 ‘이제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정말 바닥이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이 술 한잔하자고 해서 만났더니 ‘자살하지 말자고 다독이는 분위기’라고 하더라. 나는 포기하지 말고, 회계 쪽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 쌍용차는 상고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에서 뒤집힐 수도 있지 않나.

    “판결문의 회계 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회계사들 중에서 이런 정도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비율은 5%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전문가인 내가 써도 열흘은 걸릴 것 같은데 판사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숫자로 뒷받침된다. 이걸 배척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 회계가 조작됐다고 보나.

    “감사조서와 감사보고서, 1·2심에 각각 제출된 감사조서, 금감원에 제출된 조서 등의 숫자가 모두 다르다. 10원 단위까지도 맞춰야 하는 게 회계다. 예를 들어 감사조서와 감사보고서에서 1600만원의 차이가 나는 것을 단순 오류로 치부하고 최 교수의 감정보고서에서는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미미한 차이라고 해버렸다. 회계조작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곳곳에서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 제대로 감리하지 못한 금감원에는 재감리를 요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 회계법인의 공정성이 문제될 상황이다.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위기를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 문구가 자본잠식이다. 결국 회계상 손실의 과대 계상 문제가 핵심이다. 회계법인과 고객인 회사는 일종의 갑을 관계다. 실제로 대기업 감사를 하면 아예 자료를 주지 않다가 철수하기 직전에야 던져준다. 회사 자료를 그대로 받아적을 수밖에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회계법인이 깐깐하게 하면 업체를 바꿔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리해고 과정에서 부실한 회계감사가 광범위하게 기초자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 고법 판결을 보며 생각과 소회가 남달랐을 듯하다.

    “쌍용차 사건을 맡으면서 까닭 없이 많이 울었다. 특히 최 교수의 감정보고서가 나온 후에는 매일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 하나 이길 것이란 사람이 없었고 가망 없다고 말하더라. 이번 판결이 나올 때까지 너무 힘들었다. 스스로는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지더라도 평생 이 문제를 안고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재판부가 힘든 과정을 보상해준 것 같다. 희망을 봤고,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것 같다.”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